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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4화
평야 구역, 현 서울 대미궁의 최전선.
불과 1년여 전까지만 하더라도 용암 구역의 초입에서도 적지 않은 헌터들이 활동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난 용암 구역 원정 실패 이후부터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대한민국 헌터계는 닉스가 벌인 복수극과 권제나의 죽음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친 끝에 전체적인 헌터들의 수준이 내려갔고, 그로 인해 평야 구역은 최전선이 되었다.
그런 만큼 과거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기는 했어도, 어쨌거나 이곳 평야 구역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은 현 대한민국에서 최정상급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모두가 제 기량에 대해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정도면 충분히 강하다 같은 그런 종류의 자신감 말이다.
그리고 이런 얄팍한 자신감은 아이들을 찾아온 보호자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첫 시작은 연중무휴로 몰아치던 폭풍이 어느 순간 잠잠해졌을 때다.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헌터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 무렵, 그들이 나타났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잔뜩 눈이 돌아간 보호자들.
폭풍을 부리는 기류를 앞세워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헌터건 몬스터건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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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EOS파워볼 앞길을 막아서는 이들은 당연하고,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치워버렸다.
사실 헌터들로서는 조금 많이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다.
오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 SS랭크의 고랭크 몬스터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을 말이다. 로투스바카라
권제나를 포함한 과거 5대 길드의 전력이 모두 온전한 상태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할 일일 것이다.
몇몇 헌터들은 마주친 몬스터들이 불과 얼마 전 LA와 뉴욕에서 난동을 부린 바로 그 몬스터들이란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평소라면 나름대로 자비를 베풀었을지도 모를 스노우가 오늘만큼은 일절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억울한 로투스홀짝 만큼 사실 몬스터들도 굉장히 억울한 상황이다.
그들로서는 지금 상황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언제나처럼 헌터들과 치고받는 중에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중 찾아온 보호자들.
그들은 말 그대로 오픈홀덤 재앙이었다.
나름 평야 구역에서 힘 좀 쓴다는 구역주, 계층주 수준의 고랭크 몬스터들도 얄짤이 없었다.
낙엽처럼 이리저리 휩쓸리는 헌터들과 똑같이 휩쓸릴 뿐.
항거할 수 없는 힘의 차이 앞에 헌터도, 몬스터도 모두가 공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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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의 손에 속절없이 휩쓸리는 헌터와 세이프게임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스노우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들이 안전할 것이라던 닉스의 보증과는 별개로 그녀는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딱히 그녀가 닉스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만큼이나 더 닉스를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니 닉스가 괜찮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괜찮은 것일 테지만, 그렇다고 마냥 속 편히 있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어미의 마음 아니겠는가?
괜찮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화풀이를 위한 감정이 가득 실린 옥타비아의 문어발이 드넓은 평야를 엉망으로 만드는 것을 지켜보며 스노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을 멋대로 데리고 가서 이 사단을 만든 미궁도.
헌터나 몬스터들을 상대로 열심히 화풀이하는 옥타비아나 바야바도.
슬쩍 눈치를 보며 새로운 군단병을 모으는 블루아이도.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럴 능력이 되면서도 태평하게 방관하고 있는 닉스였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걱정하는 것을 안다면 모른 척 나서서 아이들을 찾아와도 되건만.
닉스는 여전히 무겁기 그지없는 그 몸뚱이를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각박하기 그지없는 서방님이 아닌가?
괜스레 차오르는 짜증에 스노우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아이들만 무사히 찾으면 한번 드잡이질을 해야 할 듯싶다.
이래서야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이 유지되지 않는다.
기강 한번 제대로 잡아야지.
그렇게 스노우가 조용히 닉스를 생각하며 이를 갈고 있을 무렵, 웬 오크 한 마리가 쿠웅- 그녀의 발치로 떨어졌다.
비바람에 잔뜩 축축해진 진흙더미가 한가득 튀었다.
“…….”
[…오우-]
누군가 내뱉은 탄식과도 같은 탄성이 울린다.
열심히 문어발을 휘두르던 옥타비아가 석화라도 당한 듯 그대로 굳었다.
너무 열을 냈더니 힘 조절을 조금 잘못한 모양이다.
옥타비아가 슬금슬금 마님의 눈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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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기 그지없는 정적이 흘렀다.
“…….”
스노우는 별다른 말 없이 제게 튄 진흙더미를 느릿하게 털어냈다.
가만 생각해보니 닉스를 손보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녀석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을 잘 지켜보라고 붙여놨더니 정작 바로 코앞에서 아이들을 놓쳐버린 원흉.
옥타비아를 가만히 바라보며 스노우가 천천히 움직였다.
여의주 덕에 최근 레이시아를 넘어 SSS랭크에 한없이 가까워진 그녀다.
어떻게 봐도 옥타비아가 갈가리 찢겨 나갈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다.
숨을 죽인 채 눈치를 살피던 바야바가 조용히 옥타비아의 명복을 빌었다.
그녀는 정말 운이 나쁜 문어였다.

노관식은 수개월 만에 찾아온 모처럼의 여유에 한가롭게 커피를 홀짝였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정말 한없이 바빴다.
본인이 선택한 길이긴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고달픈 삶이었다고 할까?
특히나 닉스의 복수극으로 인한 혼란의 여파를 거의 직격으로 얻어맞은 노관식은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바쁜 삶을 보냈다.
노관식을 포함해 그 밑의 황석호 같은 부하들 모두가 말 그대로 갈갈갈- 갈려 나갔다.
그리고 그런 지독한 시간 속에서 겨우겨우 찾아온 꿈만 같은 휴식.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노관식은 허허롭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해외 쪽은 아직도 여전히 난리라고 했던가?
이제는 조금 한가로워진 국내와는 다르게 해외, 특히 미국 쪽은 여전히 바쁜 듯싶었으나, 거기까지는 노관식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LA와 뉴욕 사태로 인한 세계 헌터계의 퇴보?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 뉴욕과 갑작스레 대미궁이 사라져 난리가 난 LA?
LA와 뉴욕을 난장판으로 만든 몬스터들에 대한 대책?

안타깝게도 노관식은 위 사항들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LA와 뉴욕에 등장했던 몬스터들에 대한 것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만, 어쨌든 노관식은 굳이 심각하게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
‘B.D(Black Disaster)’, ‘검은 재앙’이라는 코드 네임이 붙은 그 상식 밖의 괴물이 나타난다면 사실 인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냥 쓰나미나 화산 폭발같이 인류가 어쩔 수 없는 재앙이 찾아왔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뭐, B.D라면 쓰나미나 화산 폭발 같은 평범한(?) 재앙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지름 수십 킬로미터짜리 운석이 떨어지는 수준의 행성 파괴급 재앙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지만.
어쨌거나 전자나 후자 모두 인류가 손을 쓸 수 없는 범위인 건 맞았다.
그런 재앙을 상대로 괜히 머리 굴려가며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나타나면 그냥 죽어야지.
LA 대미궁의 갑작스러운 소실과 함께 발 디딜 수 없는 땅이 된 뉴욕 탓에 사실상 두 개나 있던 대미궁을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된 미국에서 자꾸만 은밀한 연락을 보내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애초에 LA라면 몰라도 현재 뉴욕이 그 꼬라지가 된 것은 반쯤 미 정부의 책임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정도까지만 해도 회생이 가능했던 뉴욕을 앞으로 수십 년은 사람이 발 디딜 수 없는 곳으로 만든 것이 바로 미 정부가 사용한 핵미사일 아니던가?
특히 그 난리를 쳐놓고도 B.D를 제외한 다른 몬스터 하나 제대로 쓰러트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전혀 웃지 못할 코미디였다.
다행히 B.D를 포함한 몬스터들이 나타났을 때처럼 조용히 사라져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노관식은 차라리 미궁으로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그런 재앙이 멀쩡히 움직이는 바깥보다는 차라리 미궁이 훨씬 더 안락하게 느껴졌으니까.
어쨌거나 근래의 노관식은 바빴던 일을 모조리 처리하고 상당히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 앞으로의 매일이 계속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유철영 그 너구리 같은 대통령 양반도 근래 들어 상당히 조용한 상태고, 키메라들도 마찬가지로 잠잠하니 앞으로 쭉 이대로면 정말 소원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매일을 보내다, 황석호한테 적당히 협회장 직을 물려주고 은퇴한 다음, 어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처박혀 유유자적한 귀농 라이프를 보내는 것이 노관식의 꿈이었다.
필요한 기틀은 다 잡아 놓았으니, 제가 은퇴하더라도 잘할 수 있겠지.
설령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이미 그때쯤 노관식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화로운 귀농 생활을 즐기고 있을 테니까.
만약 무슨 사건이 생기더라도 자기가 은퇴한 다음에나 터지기를.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노관식이 조용히 소망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노관식의 소망은 채 1분도 되지 않아 박살났다.
“협회장님─!”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황석호의 모습에 노관식이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본능적으로 느낌이 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터졌구나.
아, 왜 하필 지금일까?

일할 땐 하더라도 커피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
이렇게 또 자신의 평화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방해하는 세상이 노관식은 문득 미워졌다.
“…또 뭐냐, 석호야?” 스멀스멀 차오르는 짜증을 애써 억누르며 노관식이 짐짓 여유롭게 물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요!” “…그래. 큰일이 났겠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지? 또 누가 죽었냐? 아니면 미궁 내 이상 사태? 설마 고랭크 몬스터라도 나타난 거냐? 도대체 또 무슨 일이야?” 여유로운 척하던 것도 잠시 말을 하다 보니 억울함이 차올랐던 것인지 노관식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그런 노관식의 반응에 움찔한 황석호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도대체 뭐니, 석호야. 말을 좀 해봐.” 사납게 저를 노려보는 노관식의 시선에 황석호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황석호의 모습에 괜스레 가슴이 답답해진 노관식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저건 또 언제 사람 되려나?
이러니 내가 마음 놓고 은퇴를 할 수가 없어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삭히기 위해 노관식이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그리고 황석호가 입을 연다.
“…그것이…. 전부 다입니다.” “푸웁─!!!” 노관식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커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커핏물이 집무실은 바닥은 물론이고, 황석호에게까지 흥건히 튀었다.

당연하게도 지금 이 사실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전부 다라니?!” ‘켁켁’ 기침을 내뱉으며 노관식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는 도저히 황석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지,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무언가 몹시도 간절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노관식을 향해 황석호는 담담히 사형 선고를 내렸다.
“…협회장님이 말씀하신 상황이 모두 다 일어났어요.” 믿을 수 없어!
말도 안 돼!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 중 찾아온 끔찍한 상황에 노관식이 거칠게 절규했다.
차라리 모든 게 꿈이기를.
지금의 상황이 휴식 시간 동안 잠깐 잠든 자신이 꾸는 악몽에 불과하기를.
노관식은 그리 간절히 빌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상황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잠시간 현실을 도피하던 노관식이 이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래, 동요하지 말자.
자신은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의 협회장을 해온 그 노관식이 아닌가?
이번 일도 분명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래서 상황은?” “평야 구역에서 활동 중이던 헌터들 상당수가 실종. 사막 구역에서 고랭크 몬스터들을 확인. 그중 SS랭크가 최소 여덟 체 이상입니다.” 아, 은퇴 마렵다.
황석호의 보고에 탁- 이마를 짚은 노관식이 제 책상의 모서리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저기다 머리를 박으면 모든 게 괜찮아지지 않을까?
“…거기다 머리 박아도 책상이 부서지지, 협회장님은 멀쩡해요.” 아, 헌터의 신체 스펙은 또 왜 이리 좋아서.
노관식은 오늘만큼 자신이 헌터라는 사실이 미웠던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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