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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산에서 항주까지의 거리는 이백 리가 조금 넘는다.
보통 사람에게는 이틀 정도가 걸릴 만한 거리겠지만, 고수들로만 구성된 문조경 일행에게는 다르다.
한 시진 반 정도만 고생한다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추적 때문에 그 짧은 길을 돌고 돌아야만 하니 답답할 뿐이다.
당심한이 대연검단을 유인해서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게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각 전부터 일행의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백 명 이상이군.’ 흑야편복은 침을 꿀꺽 삼켰다. 최소 대연검단의 백 이상이 휩쓸리지 않고 뒤쫓아 오고 있는 것이다.
‘저들 중에 남궁산경이 있을까?’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손속을 나누어 봤었다.
그에 대한 소문이 오히려 모자랐다.
흑야편복은 그를 상대로 필승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봉왕 진산이라 하여도 마찬가지 일터였다.
더구나 부단주인 남궁휘강이란 작자도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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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쪽은 로투스바카라 사해서생, 이제는 당심한이 분신한 인물인지는 알았지만, 그의 부재는 상당히 컸다.
하지만 진정 심각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커어억!” 갑자기 흑도가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졌다. 바로 곁에서 달리던 혈검산자가 빠르게 어깨를 붙잡아 바로 세우려 했지만, 흑도의 두 발은 땅을 디디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입가에 죽은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독.”
색만으로 가늠한다면 갈문귀를 죽인 그 독과 같은 듯싶었다.
적의 첩자가 다시 손을 쓴 것이다.
“젠장!” 흑야편복은 욕설을 뱉으며, 경공을 좀 늦췄다.
그러자 일행 로투스홀짝 모두가 그를 따라 속도를 늦췄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지 일정한 정도의 거리를 두었다.
“이보게. 흑도! 정신 차리게나!” 혈검산자가 흑도를 깨우려 해 봤지만, 흑도는 눈을 뜨기도 힘겨운지, 부들부들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혈검대숙. 돈 값어치를 못 하게 되었군요.” 흑도의 말에 혈검산자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 아니야! 자넨 값어치를 잘했어. 안 그렇소, 문 장문인?” 문조경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위로가 되는지, 흑도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혈검산자는 정신을 잃는 흑도를 깨우려 다급히 볼을 두들겼다.
하지만 흑도는 오픈홀덤 이내 숨조차 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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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천봉(千峰)아! 네 너의 사부를 어찌 대하라고 이리 가는 게냐!” “천봉?” 봉왕 진산이 뭔가 잡히는 것이 있는지, 갑자기 다가가 흑도의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크게 탄성을 뱉었다.
“아! 너 이놈, 도왕(刀王) 남 형의 제자였구나!” 강호칠왕 중 봉왕과 풍왕에게만 위를 내주었던 고수, 도왕 남수종(嵐首從)은 일흔을 바라볼 무렵에 어디서 핏덩이 하나를 데려오더니 제자로 삼았다.
봉왕 진산은 종종 그의 은거지를 찾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수발을 드는 그의 제자가 기꺼워 한두 수씩 가르쳐 주고는 했다.
“허어. 내 나중에 남 형의 얼굴을 어찌 볼꼬. 허어.” 탄식하며 자책을 하는 봉왕 진산에게 흑야편복이 다가서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못 봤소?” 누가 흑도를 죽였는지 보지 못했냐는 소리다.
봉왕 진산은 살짝 세이프게임 고개를 저었다.
흑야편복은 이를 악 깨물었다.
정말 큰 세이프파워볼 문제였다.
항주까지 달린다면, 대연검단에게 잡히기 전에 도착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첩자의 암수에 그 전에 다 죽게 될지도 모른다.
‘어째야 한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문조경을 돌아보았다.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하여 일행과 속도를 맞추느라 힘겨웠던지 그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렇게 경공을 펼치는 와중에 말을 하는 것조차도 힘겨워 보였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잔잔했다. 그리고 매우 단호했다.
“패를 둘로 나누죠.” 둘로 나누자니. 무슨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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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혈검노야, 그리고 흑야편복 대협까지 셋, 봉왕노사와 맹검, 월인.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 갑시다.” 모두가 문조경을 노려보았다.
심지어 맹검과 월인의 눈에는 살기까지 어렸다.
당심한이 가기 전, 첩자로 예상했던 사람 셋을 한패로 묶었다.
말이야 둘로 패를 나누자는 것이나, 실은 당신 셋은 믿지 못하니 차라리 따로 가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특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절정고수이며 남무림의 큰 어른으로서 존경받아야 마땅할 봉왕 진산에게는 모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봉왕 진산은 그저 한번 크게 웃어젖힌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리하세나.” 봉왕 진산이 그리 나오니, 맹검과 월인은 거부할 수 없었다.
“덕청(德淸)에서 흩어집시다. 문 장문인 쪽은 우회하여 여항(余杭) 쪽으로 빠져 들어오시오. 우리는 항주로 직진하겠소.” 봉왕 진산의 말에 문조경은 잠시 고민했다.
안길로 빠졌다가 임안을 경유해서 항주로 가는 길은 최소 반나절은 잡아먹는 우회로이다.
반면 덕청에서 항주로 직진한다면, 한 시진이면 족하다.
다만 그 길에 매복이 있다면, 꼼짝없이 당하고 말 외통수이다.
문조경은 봉왕 진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른 둘은 모르겠지만, 봉왕 진산만은 첩자이리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지금 그는 일종의 희생을 할 생각인 것이다.
만약 매복이 있다면, 발을 묶어 둘 심산이다.
없다면, 항주에 닿기 전에 돌아서 오히려 뒤를 돌볼 생각이겠지.
문조경은 정념으로 가득한 봉왕 진산의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봉왕 진산은 푸근히 웃으며 정면을 돌아보았다.
조금만 더 가면 덕청이었다.

* * “거참, 미꾸라지 같구먼.” 뒤따르는 남궁산경으로서는 짜증이 날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백 장 정도의 거리가 도무지 좁혀지지를 않았다.
수하들 때문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뇌음고에 의해 명령을 받고 있어, 평소 실력의 칠 할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더욱이 방향을 틀 때마다 번양고를 통해 하나하나 명령을 내려 줘야 하니, 답답하기도 했다.
“응?”
그때였다. 선두로 달려가던 남궁산경은 전면에 보이는 한 구의 시체를 보고 살짝 속도를 늦췄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기에 눈을 좁혔다가 조금 더 가까워지자 알아볼 수 있었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칼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루던 문조경 일행 중 하나였다.
눕혀 있는 바닥을 흥건히 적신 핏물이 검게 물들어 있는 것이, 독살을 당한 게 분명했다.
남궁산경은 잠시 스쳐보는 것만으로도 그 독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았다.
당심한도 몰라본 독을 그가 알 수 있는 건, 독을 살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까닭이었다.
“잘해 주고 있구먼.” 잠시 더 달리니 남궁산경만이 알아볼 수 있는 비문이 남겨져 있었다.
남궁산경은 경공을 멈추고, 쪼그려 앉았다.
“문조경은 여항으로 우회했다? 가로질러 매복하라고? 어디다 대고 명령인지, 캭, 퉤.” 비문에 침을 툭 뱉고 일어선 남궁산경은 히쭉 웃었다.
“이번만 따라 주지. 큿.” 천라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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